장정후 작가
원후취월(猿猴取月)
‘원숭이가 바라보고 잡으려는 달은 물에 비친 허상이요.
스스로의 분수를 망각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 달을 잡으려다 결국 물에 빠져 죽음을 면치 못하리.’
당신이 바라보는 달은 물에 비친 허상인가, 아니면 도달할 수 있는 실체인가.
고사성어는 물에 비친 달을 잡은 어리석은 원숭이의 모습을, 반대로 한자 원문은 달을 쟁취한 원숭이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하나의 고사성어 속 이처럼 상반된 해석을 동시에 담고 있는 양면성을 통하여, 닿을 수도 혹은 닿지 못할 수도 있는 이상의 쟁취를 향해 사투하는 인간의 삶과 마주하였다.
알루미늄 철판 위에 스크래치로 뒤덮여 화려한 빛을 머금은 투쟁의 흔적들은 무엇에 대한 갈구와 욕망. 허나 이는 물리적인 쟁취라는 야욕을 넘어, 스스로를 태워 비움으로써 참된 이상과 마주하기 위한 몸부림과 그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대중화된 지향을 타파하여 마주한 적 없던 새로운 어딘가를 향한 수행의 시간이다.
‘나를 비운다는 것은 더 나은 이상의 쟁취를 향한 더 나아간 욕망이다.’
마음속에 그려놓은 어지러운 상념들을 태워 백지화 한다면, 신께선 과연 그 위에 어떤 우연이란 절경을 그려주실까?
그 때 마주한 어떤 순간이야말로 필연이며, 우리들 각자의 운명을 넘어서 마주한 참된 양식. 진정한 이상과 조우하는 순간이 될 거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의 작업을 우리 인간이 가진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위대한 삶의 에너지로써,
그리고 인간이었기에 불완전함을 극복하고 진중하게 세상을 등반하는 현대인의 발자취로써 보여주고자 하였다.
알루미늄 철판 위에 표현된 스크래치 드로잉은, 고사성어 속의 달빛이자 물에 비친 잔상 그리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담은 타오르는 불의 형상을 작가의 조형 관념으로 해석한 결과물이다. 보이는 위치와 각도의 따라 철판 위에 자유로이 표현된 기하학적인 스크래치 라인이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면서 신비롭게 보이도록 하였고,
이를 통해 작가 고유의 관념미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또한 이는 우리 인류가 가진 생명의 에너지이자, 이상을 향한 작가 본인의 격정적인 삶의 모든 순간을 담아낸 힘의 골자다.
이상의 도달이란 무엇 일까.나는 관객에게 물과 달이라는 환영(幻影)과 이상(理想)의 경계에서 펼쳐지는 인고의 시간 속, 우리들이 갈망하며 달려가는 그 종착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철판 위에 각인된, 생명의 에너지로 가득한 인류의 이 아름다운 투쟁과 행보의 끝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오늘도 나는 스크래치로 스스로를 태움으로써, 그토록 갈망하였던 어딘가로 한걸음 더 다가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