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THE GAZE
묘한 표정의 소녀들이 있다. 만화에서 본 것 같은 소녀들의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설다. 만화 속 캐릭터는 주인공은 주인공답게 악당은 악당답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다. ‘대상의 특징이나 그것을 나타낸 그림’이라는 어원처럼 캐릭터(character)는 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예린 작가의 그림에서는 그 어떤 전형적인 캐릭터성을 읽어낼 수 없다. 과감하게 클로즈업된 이미지는, 인물에 대한 어떤 정보도 주지 않고 그저 묘한 시선과 맑은 색감만으로 가득하다. 이예린 작가는 불완전한 세계를 그려내며, 그 안에 캐릭터 대신 무엇이든 투영할 수 있는 공백을 그려낸다. 칠해진 색면과 알 수 없는 듯한 다양한 표정들은 그림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각자의 이야기를 상상하게끔 한다. 공백을 가로지르는 건 오직 어디를 향하는지 모를 ‘시선’뿐이다.
그 시선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이예린 작가는 만화와 동화를 즐겨 보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내려다본다. 새로운 세계에 반짝이던 눈동자와 호기심 어린 표정은 어느새 너무도 멀게만 느껴진다. 어린 나는 만화 속 세계에 시선을 빼앗기고, 어른이 된 나는 그런 어린 나를 바라본다. 그림 속 소녀의 알 수 없는 표정과 시선은 과거와 현재의 시선이 서로 엇갈리며 발생한 미묘한 간극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화 속 세계를 동경하던 어린아이의 시선
어른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는 현재의 시선
곧 그려질 그림 속 소녀의 시선
서로가 서로를 응시하자, 평행을 달리던 시간의 끈이 그림 안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이예린 작가는 물리적 시간을 초월해 과거와 현재, 미래가 조우하는 순간을 평면 안에 담아낸다. 그리고 교차된 시간과 시선 사이에서도 소멸되지 않는 ‘감정’을 포착해낸다. 어린 시절 순수한 동심은 어른이 된 지금에도 마음속 한구석에 남아있다. 날씨에 따라 색이 바뀌는 구름처럼, 매일 조금씩 다른 색과 형태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예린 작가는 특유의 맑은 색감으로 어린 시절 느꼈던 정제되지 않은 순수한 감정 그 자체를 그려내고자 한다.
시시때때로 ‘왜요?’라며 되묻던 물음표는 모두 느낌표로 정리되어 버리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이예린 작가는 다시 한번 물음표를 던져본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