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희 작가는 반으로 잘린 꽃의 단면에서 인생의 순리를 발견한다. 꽃의 단면에는 꽃으로 피어나기 전 태초의 모습부터 만개한 꽃잎, 지고 있는 꽃잎까지 꽃의 생애가 모두 담겨있다.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한눈에 펼쳐 보이는 것이다.
꽃을 반으로 툭 잘라버린 무심함 속에는 삶의 본질을 단번에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 담겨있다. 겹겹이 싸인 꽃잎을 파헤쳐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이면까지 훤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과 그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순응하며 살고 싶은 욕망이 한 데 뒤섞인다. 뒤섞인 욕망 사이에서도 박소희 작가는 계속해서 삶의 기원에 다가가고자 한다. 그리고 아주 가까이에서 그 기원을 발견한다.
지금 여기 살아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해서 종종 그 가치가 무색해지곤 한다. 그러나 새로운 탄생을 기대하는 것도,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는 것도 모두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삶과 죽음은 모두 ‘살아있음’에 기원하고 있다. 이제 박소희 작가의 ‘the Origin of Life’ 시리즈는 ‘삶’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작가는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가를 고민하던 것에서 살아있음, 사는 일, 생(生) 그 자체를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생명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꽃의 중심부를 더욱 강조하고 만개한 꽃잎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면서, 살아있음의 아름다움을 작품 안에 담아낸다.
한 꺼풀 한 꺼풀 꽃잎이 자라나며 한 송이 꽃을 이루듯, 인생 역시 이처럼 경험의 겹을 쌓아나가는 일이다. 행복했던 경험 한 겹, 아프고 상처받았던 경험 한 겹, 희로애락이 담긴 인생의 겹들이 모여, 꽃으로 피어난다. 박소희 작가가 장미를 주로 그리는 것도 장미의 풍성한 꽃잎이 인생의 무수한 겹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온전한 장미꽃 한 송이를 그려내는 대신, 장미를 반으로 갈라 인생의 겹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꽃을 반으로 잘라냈던 무심함은 사실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겠다는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소희 작가가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답고 이상적인 삶이 아니다. 만개한 한 송이 꽃은 피고 지는 인생의 순리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반으로 잘린 꽃의 단면은 지나온 인생의 무수한 겹들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삶의 의지와 생명력까지 담아낸다. 암술과 수술로 이루어진 꽃의 중심부는 생명이 움트는 모습을 연상시키고, 겹겹이 피어나는 꽃잎은 시련에 굴하지 않고 더욱 단단하게 피어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온전한 형태의 한 송이 꽃은 절대 보여주지 못하는 진정한 삶의 모습이, 박소희 작가의 반 송이 꽃에는 고스란히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