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uched by, 촉각적인
이번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이는 <앤디워홀_플라워>시리즈는 김미숙 작가의 실험성과 도전정신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김미숙 작가는 ‘작품의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다, 표면만 보라’고 말하는 앤디워홀의 철학을 살짝 비틀어, 관람객을 작품 안으로 깊숙이 끌어당긴다. 하나부터 열까지 똑같이 찍어낸 워홀의 실크스크린과 달리, 김미숙 작가의 꽃은 하나하나 작가의 손을 거쳐 피어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색을 올리고 적절한 온도와 습도에서 말렸다가 다시 사포로 갈아내는 복잡한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꽃 한 송이가 피어난다. 단번에 찍어 나오는 실크스크린과 달리, 옻칠화는 천천히 수행하듯 완성시켜 나가는 작업이다. 옻칠화의 깊이는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 나온다. 팝아트가 시각적으로 눈을 매혹시키는 것에 머무를 때, 김미숙 작가는 질감을 더하고 깊이를 더해 촉각적인 느낌까지 작품 안에 담아낸다.
그러므로 워홀의 플라워와 김미숙 작가의 꽃은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르다.
● Touched by, 손으로 완성된
‘칠흑’같은 어둠이라는 표현에서 칠흑은 ‘옻칠처럼 검고 광택있다’는 뜻에서 나왔다. 옻나무에 상처를 내면 나오는 진액을 칠이라 하는데, 옻은 강한 방부성, 방풍성, 내화성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공예품에 활용되어 왔다. 옻칠은 그 해의 날씨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고, 채취가 어려운 고가의 재료인데다 옻이 오르는 단점으로 인해 회화의 재료로 사용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옻칠은 이미 회화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색을 칠(柒)하다’의 칠 역시 옻칠에서 유래된 말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옻칠화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특히 김미숙 작가와 같이 인물화를 그리는 작가는 더욱 드물다. 김미숙 작가는 옻칠뿐만 아니라 자개, 금박, 은박 등 전통 공예 기법을 두루 함께 활용한다. 그러므로 김미숙 작가의 옻칠화는 붓으로 완성되는 그림이 아니라, 손으로 완성하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손의 수고로움이 더해져 일반적인 회화에서는 볼 수 없는 깊이 있는 색감과 광택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손에서 시작해, 손으로 완성되는 작품이 바로 옻칠화이다.
● Touched by, 마음을 어루만지는
꽃을 피우기까지, 소녀가 여인이 되기까지, 절정의 순간은 언제나 기나긴 방황과 고난의 시기를 동반한다. 옻칠화도 마찬가지이다. 옻칠화는 색을 채우고 갈아내고 다시 채우는 지난한 반복의 과정을 견디고 견뎌야 마침내 빛을 얻는다. 작업 과정에서 옻이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몇 번이고 채색과 사포질을 반복하며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김미숙 작가는 이러한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사소한 과정까지 성실히 해냄으로써 찰나를 영원의 순간으로 붙잡는다.
또한 김미숙 작가는 지나간 찰나의 아름다움에 아쉬워하기 보다, 그것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도록 끝없이 연마하는 쪽을 선택했다. 작가는 기꺼이 어둠을 갈아내고 벗겨내며, 빛이 바랜 오래된 기억에 다시 색을 얹고 빛을 비춘다. 작가는 어둠을 갈아내며 비록 흠이 좀 날지라도, 세월의 상처로 인해 더 강인한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그녀의 옻칠화 속 꽃과 여인은 시들지 않고 영원히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