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SION9

  • CHOI JEEYUN

    b.1962

    나는 시간의 공력을 믿는다. 내가 좌절했던 시간들, 어둠 속에서 하나의 빛을 향해 걸어온 시간들, 내가 붓을 들고 있었던 시간들, 고뇌 우울 눈물 분노 사랑 기쁨의 시간들. 이 모든 시간들의 힘을 믿는다. 내가 붓을 들고 있던 시간들은 때론 과역(課役)을 수행하는 것처럼 고통과 눈물도 따랐으나 그 고뇌 또한 공력의 시간들이었음을……
    산이 오랜 세월 어떠한 생명체보다도 풍성한 생명력과 섬세한 아름다움과 마를 줄 모르는 정열을 지니며 살아있는 것처럼 나의 그 모든 시간들이 쌓여 내 작업의 생명이 되고 영혼이 되어 내 옆에 살아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눈물 나도록 그리운 순간들이 있다. 그 시절로 그 과거로 갑자가 뛰어가고픈 충동이 일어날 때가 있다. 그것들은 잔잔한 바람으로 혹은 태풍처럼 나의 마음을 밀고 들어온다. 그렇게 나의 마음을 밀고 올라오는 모든 종류의 감정들을 흰 공간에 뿌려나가는 것으로 나의 작업은 시작된다.’ 오래 전 작업노트이다.
    현실이 버겁고 힘들 때 사람들은 행복했던 과거를 소환하여 잠시 머무른다.
    그 일이 위안이기도 하고 역으로 깊은 슬픔이 되기도 한다.
    한동안 나는 그러한 모든 감정을 화면에 쏟아내며 스스로 황폐해지는 시기도 겪었다.

    어느 날 들꽃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 시기부터 내 작업의 근본은 사랑을 향해 걷는다.
    산의 가는 물줄기는 강물을 이룬다. 내 새끼손톱 반만도 못한 물줄기 옆 자그마한 꽃은 강둑에 이르러 바람을 머금은 화려한 들꽃이 된다. 그게 좋았다. 그게 행복했다. 그걸 사랑했다. 내 황폐했던 시간들은 꽃들로 충분히 보상받곤 했다.

    2014년부터 화면에 소재로 선택한 또 하나의 사물 ‘보석’은 바람에 단단해진 원석이 풍화와 퇴적을 거듭하고 가공되어 영원한 빛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풍화와 퇴적된 부드러운 흙은 ‘꽃’을 잉태함을 알았다. 이별과 상실의 아픔 속에서 변하지 않는 영원한 무엇을 찾고자 했던 나는 자연이라는 환(幻)의 고리 속에서 최고의 아름다운 ‘꽃’과 ‘보석’으로 영원히 존재함을 사랑의 서사로 풀어내게 되었다.
    결국 나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살아있는 온갖 감정을 농축시켜 주는 것이며 그 행위 자체에서 모험, 사랑, 갈등, 초조, 뿌듯함, 노동의 희열 창조적 기쁨, 견딜만한 인생의 고통과 비애, 만족 등을 접하고 그래서 ‘작업’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던져진 나의 육체와 정신을 그나마 충족시켜주는 유일한 그 무엇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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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하놋다2428 , 캔버스에 장지, 멜리다이아몬드, 혼합재료 , 80 x 80 x cm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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