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SION9

  • GINA SOHN

    b.1965

    지나 손은 대지에서 일어난 일을 현대의 연극과 무용의 장치를 통하여 상징으로 표현한다. 상징은 고대 그리스어 ‘sumballein’에서 온 것이다. ‘sumballein’은 함께 불러내는 것이다. 수많은 의미를 부른다는 뜻이다. 숨은 의미를 소환하는 것이다. 지나 손이 「연기를 풀다」라는 대지 설치미술에서 여섯 퍼포머가 검은 연기를 허공에 펼친다. 빛이 어둠을 통해 현시되듯이, 우리는 연기를 통해서 바람이 떠나는 곳을 보게 된다.

    허공에서의 드로잉은 시공에 대한 물음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은 도가에서 말하는 도(道)와 유가에서 말하는 천(天)과 같다. 그것은 비어있는 허무(虛無, nihil)가 아니라, 만상(萬象)의 원천이자 만동(萬動)의 근본이다. 비어있다는 것은 텅 빈 충색이다. 우리는 비어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 형(形)의 완성은 기(氣)의 쇠퇴와 같은 말이듯이, 거꾸로 비어있다는 것은 에너지의 충색(充塞)을 뜻한다. 지나 손이 표현하는 공간은 우리의 근원이자 생명체험으로 가득한 삶의 충만을 뜻한다. 따라서 작가는 이러한 경험을 ‘첩첩(疊疊)’이라고 부른다. ‘疊’은 ‘거듭되다’는 뜻도 있거니와 ‘접힌다(屈)’라는 뜻도 있다. 그런가 하면 ‘울리다(振作)’라는 뜻도 있고, ‘마음에 품다(懷)’는 뜻이 있는가 하면, ‘밝히다(明)’라는 뜻도 있다. 결국, 우리는 시공의 일부분만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시공은 불가사의하다. 그것은 텅 빈 것처럼 보이지만,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불가사의한 그 무엇으로 언어를 초월한다. 따라서 이러한 불가사의를 괴테(Johan von Goethe)는 「물의 정령에 관한 노래(Gesang der Geister über den Wassern)」에서 “인간의 영혼, 너는 물 위에 있는 것만 같고, 인간의 행운, 너는 바람에 있는 것 같다(Spirit of man, Thou art like unto water! Fortune of man, Thou art like unto wind!)”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대지와 세계의 대결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가 「예술작품의 기원」에서 제기한 철학 의제이지만, 지나 손의 작품 해석에서도 유의미하다. 작가의 2021년작 「바람ㆍ물ㆍ기와」에서 지나 손 작가는 바닷가에 기와를 늘어놓아 집을 연상시키는 형상을 설치했다. 모래는 바다에 이끌려 기와에 부딪히며 기와가 가리키는 집의 형상은 차츰 바닷물에 잠긴다. 바람은 터있는[疏] 허공을 질주하며 질주하는 바람에 바닷물은 자유를 만끽하여 대지와 기와를 건든다. 기와는 물에 잠기지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세계가 열린다는 것은 대지가 닫힌다는 뜻이다. 반대로 시간을 통해서 대지는 세계를 마멸시킨다. 세계는 도구를 통하여 다시 대지를 닫는다. 한자에 원수 ‘구(仇)’ 자가 있다. 그런데 ‘원수’를 뜻하는 동시에 ‘반려자[侶]’를 뜻하기도 한다. 나의 아내는 나의 반려인 동시에 나의 원수이기도 하다. 빛은 어둠의 원수인 동시에 그것의 짝이기도 하다. 불은 달아나려고 하고 장작은 불을 끌어당기고자 한다. 그러나 장작이 소진되면 불의 생명도 끝난다. 둘은 원수이면서 짝이다. 지나 손은 우리의 세계(문명)과 자연의 진행 방향을 극화시킨 것이다. 역경(易經) 은 모든 지상의 사태는 여섯 개의 단계를 거쳐서 마무리된다고 설명한다. 모든 사건에는 결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도 단계를 거치며 자연의 진행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물과 사건에는 결이 있다. 그 결은 방향성이 있으며, 따라서 그것을 이치[理]라고도 하며 도리[道]라고 부르기도 한다. 「허공을 드로잉하다(Drawing in the Air Smoke)」에서 퍼포머가 여섯 사람으로 설정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 지나 손의 전시회 ≪첩첩(疊疊)≫에 즈음하여 ,이진명, 미술비평ㆍ철학박사 평론글 中 일부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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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의 드로잉_석기시대(Nr.1003) , Oilstick, oilpastel, oil on canvas , 90.5 x 117 x cm ,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