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SION9

  • LEE JUNHO

    b.1972

    나에게 있어 산수는 내 삶의 숨과 같다. 어린 시절 붉은 해가 내려와 온 세상을 덮는 자연을 보며 쇠꼬챙이 하나 들고 흙바닥에 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산, 들, 나무, 자연의 풍경들을 그리던 나는 이제 칼을 쥐고 화폭 앞에 서 있다. 붓이 아닌 연필 깎는 ‘칼’을 화구로 흰 캔버스 위 산과 계곡의 풍경을 담아내었다.

    나의 대표작인 붉은 산, 신-산수, 산수경 시리즈는 도끼로 찍어 쪼개듯 날카로운 칼로서 화면을 파내고 긁어내는 과정의 반복으로 완성된다.먹으로 표현되는 전통 회화를 서구의 현대적인 기법인 스크래치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절묘하게 유지하며 과거와 현재의 연결 선상에서 새로운 산수의 지평을 열고자 하였다.

    한국적인 정서인 오방색의 의미를 이어가면서 칼 끝으로 예리하게 새겨진 산수의 형상은 자연순환의 중심에 있다. 날카로운 칼끝으로 수 만 번의 선 긋기를 통해 무뎌져 떨어져 나간 칼날들은 화폭아래 수북히 쌓인다. 그 시간만큼 겹쳐진 거친 선들은 바위를 형성하고 선이 깊이 파여져 계곡과 능선이 형성된 산의 형상으로 드러나 산수풍경으로 완결되어 진다. 칼을 쥐고 선을 그어 나갈 때의 마음은 유물을 발굴하듯 조심스레 흙을 걷어내는 인고의 시간과 같다. 인내와 수양의 시간으로 칼로서 선을 만들어 빈 화면을 긁어내는 몰입의 순간 혼탁한 마음은 정화되어 새로운 산수로 펼쳐지고 있다. 고도의 정신성으로 수행의 시간과 그것을 견디어 내어 분출하는
    에너지의 축적으로 산세의 기운과 익살스러운 캐릭터들은 소통의 매개물로 긍정의 에너지를내뿜고 있다.

    칼은 고대부터 단순히 생활도구, 전쟁무기로서 뿐 아니라 나쁜 기운을 끊고 복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칼로 그린 나의 작품 속 에너지를
    보는 이들도 함께 느끼고 즐기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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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수경-63 , Acrylic on canvas-Scratched , 130.3 x 162.2 x cm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