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967
물질은 또 다른 인간의 모습이다. 난 이 물질을 관찰하고 변화시켜 나를 만난다. ‘시간’, ‘공간’, ‘존재’는 온전히 나를 확인하는 조건이다. 물질은 자신의 성질을 무심하게 포함하고 난 그 물질을 해제해서 새로운 성질과 목적에 맞게 조작, 나의 감각을 충족시킨다. 시대성이나 사회적 문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이 시공간에 존재하는 나는 이미 사회성을 띄고 있다.
나와 물질과 문제의식은 서로 충돌하고 그것을 중재하는 역할에 나의 에너지가 사용된다. 무심한 물질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며, 작은 속삭임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빠르고 침착하게 그 반응을 포착하려 노력한다.
몸이라는 노동의 근본 출발점에서 공포와 불안이라는 정신적 상태를 물질의 변형을 통해 표현한다. 인간의 몸을 파고드는 차가운 금속의 질감은 공포를 유발하지만, 그것을 통해 육체적 고통을 치유하기도 한다. 공포는 공포 밖에서 볼 때 느끼는 것이고 공포 속에서 함께 존재한다면 이미 공포가 아니다.
하나의 정의는 하나가 아닌 양극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양극은 서로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싶다. 모서리에 발을 딛고 안테나를 세운 나의 의식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모호한 선 위에 서 있다. 난 ‘경계’에 산다.
무제 , Acupuncture needle on resin , 81 x 123 x cm , 202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