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962
노동은 단순한 생존의 수단이기 이전에 신성한 삶의 가치이다. 예술은 일종의 노동과도 같은 행위이며, 예술은 노동이라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삶에 정신적 풍요로움과 시각적 감동을 주어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동을 통한 보상으로 경제효과를 누리는 것으로 해석하겠지만, 노동의 본질은 ‘땀’이며 예술 활동을 통한 ‘땀’은 명상과 수행으로 환원된다. 빠르게 진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손끝으로 전달되는 아날로그의 감성을 통해 차가운 현대사회에 온기를 불어넣고자 한다.
‘글’이라는 매체는 오래전부터 소통의 수단이었다. 예로부터 동양에서 서예는 사람과 사람, 과거와 현대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였다. 커다란 화면에 겹겹이 쌓인 글과 글이 이루는 시간의 무게가 소리의 큰 울림이 되어 공명共鳴하고, 필법과 운율, 리듬과 필력은 기운생동氣韻生動을 자아내며, 여백이 주는 여운은 여유를 주고, 물성物性 내면에 기록된 서사는 명상을 불러 일으킨다.
20세기 근현대미술사에서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앤디 워홀Andy Warhol 등의 미국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작가들을 접한 바, ‘숭고’, ‘명상’, ‘수행’이라는 개념이 우리의 서당 문화로 대표되는 유가와 도가의 사상과 더불어 종교적 개념과도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다고 보았다.
노동으로 서체를 변환시켜 우연하고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선은 불교의 수행적 의미를 가진 ‘선(禪)’과 석도石濤 석도(石濤, 1642~1707): 명말 청초의 화가. 성은 주(朱), 이름은 약극(若極)으로, 그의 저서 『화어록』에서 “일획은 만획의 근본이고 만상의 근원이다. 일획의 신비함은 자연의 경지에서만 보이며 사람들 눈에는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멀리 가는 것도 높이 오르는 것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일획(한번 그음)은 천지 밖에 있는 것까지 포함하여 모든 필묵선이 일획으로 시작되고 끝나지 않는 것이 없다.“
의 일획론一劃論에서 ‘한번 그음’을 의미하는 ‘선(線)’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붓과 먹으로 정신성을 드러낸 서지 서지: 붓으로 한지에 서체 연습을 했던 종이
를 차용한 것은 과거의 역사적 가치를 소환함으로써 현대의 시대정신과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천 년 역사를 지켜온 우리 민족의 정서와 끈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질김’과 ‘부드러움’이 특징인 ‘한지’를 재료로 선택하였다.
우선적으로 서예가들의 습작 서지를 수집한 후, 우리 고유의 두루마리 두루마리(Roll): 무언가 적혀있는 종이를 둘둘 만 것을 말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걸개 그림이나 옷감(베) 등 물건을 보관할 때 이러한 방법을 사용했다. 주로 유학에 바탕을 두고 한지와 먹을 사용하여 서체로 시·서·화를 익혔다. 지금도 선조들의 전통문화가 서실에서 서체 수련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기법을 응용하여 한지를 말고, 자르고, 붙이고, 쪼개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 ‘한지 토막’을 만든다. 만들어진 한지 토막들의 단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지의 글들은 형상이 바뀌어 먹빛을 머금은 가느다란 선들만 남는다. 이와 같이 ‘글’이 ‘선’으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지점에서 유有와 무無로 치환하여 화면을 구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지 조각들을 콜라주 방법으로 화면 위에 붙이고, 쌓는다.
화면 위에 나지막한 부조처럼 쌓인 글과 글들의 집합체는 수많은 무엇(생명체)들이
움직이는듯한 형상이 되는데, 이는 곧 ‘인간과 자연이 소통으로 하나 됨’을 의미한다.
둥그렇게 말거나 때로는 평평한 대지처럼 만들어 깎고 긋는 행위는 재료의 물성에 파장과 생기를 불어넣고자 한 것이며, 한지라는 우리나라의 전통 재료가 갖는 전통성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선조들의 서당문화에서 파생된 서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닌 소통과 행위의 수단이며, 재료 자체가 갖는 감성적 정서를 내포하고 있다. 서지를 쌓아 화면의 공간을 채우고 비우는, 일종의 묵언수행(默言修行) 묵언 수행: 불교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하여 아무 말 하지 않고 하는 참선
과 같은 반복적인 노동 행위를 함으로써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선(線)과 불교적 의미의 선(禪)을 드러내는 것이 내 작업의 요체이다.
그동안 문화와 예술의 중심을 서양으로 본 시각과 달리, 나는 해체와 자율성을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컨템포러리 아트, 즉 현대미술이 동양 사상 및 철학적 사유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잭슨 폴록의 흥은 다소 억지스러우며, 마크 로스코가 외피적으로 표현해 보려는 서구식 명상과 수행에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
우리의 정서가 베인 먹과 한지를 끊임없이 맞대고 잇고를 반복함으로써 드러난 線(선)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흥과 신명을 발견하고, 비움으로써 드러나는 여백을 禪(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수행과 명상의 본질을 성찰해 보고자 한다.
LINES 69 , 한지 , 90 x 90 x cm , 2023
선(線)과 선(禪)을 잇는 사유의 여백, 수없이 많은 한지를 쌓고 깎으며 한국적 미학의 우월성을 드러내다
선(線)과 선(禪)을 잇는 사유의 여백, 수없이 많은 한지를 쌓고 깎으며 한국적 미학의 우월성을 드러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