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975
나는 흩어진 삶의 조각, 분리된 생활체계, 그리고 심리상태 등을 자연물의 형상이나 사물의 패턴 등에 투사하여 판화 기법을 이용하여 찍어낸 후 오리거나 겹치거나 붙이는 조합을 통해 화면을 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것은 겹쳐진 각각의 이미지들이 만들어 내는 복합적인 플롯의 조형적인 구성과 관련되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연속되지 않은 생활과 타인의 피상적인 시선과 같은 것들을 삶의 속성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소재가 되는 동식물의 형상이나 반복되는 패턴 등은 제각기 직접적인 경험이나 감정이 투사된 은유이며, 이 소재들이 판재의 물리적인 속성이나 재료를 다루는 공정과 조화를 이루면서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화면에 조합하여 콜라주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면서 스스로 이야기거리가 되어 말을 걸어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판을 만들고 찍고 오리고 붙이는 것은 일상의 강박적인 스토리텔링을 해체하고 부유하는 순간의 조각들로 해소하는 실험의 즐거움과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시대의 구성원으로서 제한적인 공간과 사회적인 규정, 의무사항이나 전통적인 기대치,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부응하고자 하는 자아가 있지만, 내면에는 좀더 자유롭고자 하고, 도망가고 싶고, 가벼워지고 싶은 욕망이 끊임없이 솟아난다. 이로서 생겨나는 균열과 무게감, 심리적인 갈등과 고민은 “그림 그리기”로 시작되는 조형 행위를 통해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시작되는 그림이지만, 점점 쌓여가면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감상자들도 함께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위해 예민하지만 소심하지 않게 크고 작은 일상의 모습에 의미를 찾는 과정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리라고 다짐한다
이번 출품작 “ I, We, She #3” 는 꽃과 풀 등의 식물을 주된 소재로 하며 나와 주변인들과의 관계, 공감과 갈등에 대한 감정과 상호 작용 등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된 최근 나의 상황을 주제로 한다. 3인칭 여성대명사인 “She” 와 1인칭 대명사인 “I”는 감정의 교류와 대화를 통해 중화되고 양가 감정이 생기면서 결국 “우리” 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게 된다. 나와 타인의 거리와 관계의 성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점이 흔들리게 된다. 유동적이고 아름답거나 복잡하고 섬세한 형태를 가진 소재 이미지들을 판화로 찍어내고 그 이미지들을 오려내어 조합하며 화면에 구성하는 과정에서 개성이 강한 원색의 형상들이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I, We, She #3 , Collagraph, Drypoint, Silkscreen on Hanji, Collage on canvas , 72.7 x 90.9 x cm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