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SION9

  • HA JEONG HYUN

    b.1980

    나는 항상 어떠한 의도나 구상없이 손에 잡히는 오일바를 가지고 캔버스에 긋고 칠하고 손과 붓으로 문지르는 것을 이어간다. 이것은 아무런 마음의 거슬림 없이 유희하는 가장 기쁜 ‘나의 놀이’ 이다.

    이 순수하고 자유로운 놀이는 캔버스에 투명하리만큼 꾸밈없고 솔직한 흔적을 남긴다. 캔버스 표면에 오일 바의 끝이 닿는 찰나, 놀이가 시작되면 저절로 무언가 그어지며 내게 잠재되어 있던 무수한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끌어올려지고 터져나온다. 그것들은 또렷하기도 모호하기도 하다. 어떠한 대상이기도 상황이기도, 특정한 시간이기도 공간이기도, 느낌이거나 분위기이기도 하다.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이기도 한 이것들은 매일같이 이어지는 나의 놀이를 통해 하나의 동일한 캔버스 혹은 여러 서로 다른 캔버스에 거듭 겹쳐지고 포개어진다.

    그렇게 하여 생긴 투터우며 그득한 밀도의 중첩 속에는 내 삶의 아름답고 소중한 모든 순간들이 켜켜이 그리고 촘촘히 놀이의 흔적으로 쏟아내어져있다. 특히 모든 대상으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던, 세상의 모든 것들과 명랑한 교감을 하던, 삶 자체를 순수하게 유희하며 지내던 나의 유년기 순간들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내 아이와 함께하고 있는 지금 내 삶의 보통의 빛나는 순간들이 그 강력한 통로가 된다. 이 통로는 삶 자체를 유희하며 지내던 잠재되어있던 내 유년기 찰나들을 풍부하고 강렬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현재로 솟구치게 하여 교차되고 섞이게 해준다. 이러한 경험들은 나에게 삶의 순간들에 대한 아름다움을 지각하게 해주고 순수한 영감을 풍성하게 제공하며 작업실에서의 놀이에 자연스레 반영되어 드러난다.

    여기에는 예쁘고 행복한 것들도 있고 슬프고 아름다운 것들도 있으며 따끔하지만 우스운 것들도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삶의 순간들과 그 순간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유한하여 지금 실재하지 않기에 나에게 강한 슬픔과 두려움을 안겨준다. 하지만 흐려지고 사라지고 없어지는 그것들은 내 놀이의 흔적으로서 생생하게 다시 존재하게 된다. 유한하였던 무수한 그것들은 캔버스 속에서 한데 모이고 어우러져 영원히 그리고 무한히 생동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캔버스 위에서 놀이를 한다. 맑고 순수하여 투명한 삶의 순간들이 차곡 차곡 쌓여 깊고 묵직한 밀도가 생겨난다. 즉, ‘투명한 밀도’로서의 그림이자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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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raw without drawing 118 , Oil bar, oil pastel and acrylic color on canvas , 91 x 91 cm ,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