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988
나의 회화 작업은, 우리의 삶 형상의 근사치가 된다.
불확실성이 실상인 삶 속에서 살아내는 다양한 일상의 순간들을 수족관 인공생태계처럼 꾸미듯 캔버스 프레임에 재현한다. 수족관 구성을 차용하여 표현하는 이 일련의 작업을 통해 삶 본질의 것을 탐구하는 과정에 있다.
이런 사유의 과정에서 최근 본인이 겪게 된 어머니 죽음의 사건을 통해 삶의 본질 중에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유한함’ 을 각성하게 된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상실하는 경험을 겪고 삶을 영위하며 자리잡았던 대다수의 선입견과 합리성 등이 깎이고 잘려 나가며 아주 작은 소박함, <낭만>만이 남게 된다.
살아가는 힘을 가진 삶들은 다 제각기 낭만을 품고 있다. 낭만은 허황된 꿈이나 유토피아 같은 개념으로 다가올 미래를 향하고 있지 않다. 낭만은 지금을 살고 있는 이 순간을 충만하게 메꿔준다.
사전적으로 낭만의 낭[浪]은 물결을 의미하고 만[漫]은 질펀하고 흐트러짐을 의미한다. 복잡하고 자기실현과 증명이 요구되는 현대사회에서 낭만의 어휘와 같이 삶의 물결에 질펀해지고 흐트러질 수 있는 감각과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 가장 필요한 본질일 수 있다. 유한한 삶 속에서 지금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의 하루는 낭만이라는 감각에 충만해져야 함을 필요로 한다.
그런 삶의 태도를 바탕으로 작품 속에서 드러난 수족관 시리즈 속에 생명이 생명 있음으로 만들어주는 물질은 ‘물’ 이다. 하지만 수조 안에서 물은 생명의 근간이 됨과 동시에 고인 것에 불과하다. 수조 안에 생명이 썩지 않고 살 수 있음은 그 고인물이 인공장치를 통해 흐르고 일렁이기 때문이다. 수족작품 세계 속에서 새로이 나타난 일그러진 물의 형상은 고인 것이 생명이 되기 위해 힘써 애쓰는 작은 발버둥으로 표현되고, 이 힘씀은 오늘의 하루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낭만으로 감각되고자 한다.
수족관 작품 속에서 물의 일그러짐은 숙명적인 것이고, 생명을 유지 시켜주는 필연적인 움직임이다. 살아내기에 힘쓰는 아름다운 일상의 대상들은 더 과감히 일그러지며 물 흐름에 자신의 실존을 내맡긴다.
오늘의 낭만으로 응집된 삶은 수족관 안에서 일렁이며 유영한다.
마주함과 외면 사이 , Oil on canavas , 130.3 x 162.2 cm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