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966
형태가 지닌 물성 특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작가 고유의 권한이며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직관적 본능과 경험에 의해 작업을 진행한다. 이로써 작가는 자신의 작풍 안에서 시각적 유희를 즐기게 되고, 이런 매력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현실적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가면서도 붓을 놓지 못하고 있다.
나는 지구의 실질적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나무를 주로 그리는데 매우 단정한 형태의 특징을 보이는 나무가 많다. 나무가 과밀하게 모여 있는 경우, 나무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반면 나무가 여유로운 공간에서 자라면 스트레스가 적기 때문에 그래픽적 일만큼 단정한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스트레스 없는 나무들이 모여있는 숲을 표현하고 싶었다.
공원은 ‘시뮬라크르’라는 가상의 세계를 현실화 시킨 대표적인 공간이다. 대자연으로 회기하고픈 인간의 본성을 작게나마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공원은 치유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비록 자연의 일부 모습을 흉내 내어 만들어진 공간일지라도 치유의 능력을 가진 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허리 숙여 들여다보는 공원의 작은 숲 안에서 자연의 질서를 보고 마음의 눈에 담는다. 그래서 자연 경물을 마음의 눈에 담아 그린다는 '咸紀心目(함기심목)' 시리즈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낙타의 시간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쉼'이란 지중해식 사고방식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집중하고 음미하며 살아가는 여유로운 삶에서 진정한 '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퀘렌시아(Querencia)’는 누구의 간섭 없이 홀로 여유로운 휴식을 만끽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말한다. 누구나 원하는 공간이지만 지금 시대에 그 혜택을 누리는 자는 많지 않다. 다만 그 대안이랄까 도심 속 공원에서 느린 산책을 하며 작은 숲을 관찰한다면 그 안에서 ‘퀘렌시아‘를 만날 수도 있다. 과거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대자연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만의 '퀘렌시아'를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며 자연의 완성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으며 자연을 닮은 삶을 추구할 수 있었다. 이런 그들 삶의 방식이 가장 모범적인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이 지구에 인디언들만이 살고 있었다면
지금 지구의 모습은 어떨까. 상상해보게 된다.
뉴비기닝 No.3 , Mixed media(Scratched) on canvas , 72.7 x 72.7 x 2.5cm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