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995
골방
”유달리 지루한 날은 생각이 시끄럽지요. 그래서 제 근황을 그렸습니다. 눈에 익고 손에 익은 것들이 왁자지껄하게 모였습니다. 익숙한 생각들이 그 답게 그려졌습니다.“
예술과 삶의 영역은 분리되지 않는다. 나는 삶을 그리게 되었고 그 중 가장 잘 아는 대상인 나의 서사를 그리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창작물이 되는 소재는 거창한 대의 및 신념과는 먼, 개인적이고 흔한 일상의 파편이다. 골방에서의 익숙하고 편안한 외로움, 우연 사이의 만남, 매일 마주치는 빨갛고 파란색의 표지판, 아주 가벼이 던져진 누군가의 농담. 이 순간들의 형태 와 이유가 다를지라도, 이들의 공통점은 기록되지 않음에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망각의 축복을 살짝 비껴간 파편_삶의 순간을 ‘유령’이라 일컫는다. 이들은 기록되지 않은 채 존재한다. 유령들은 행위성과 실존성을 잃었기에 퇴색될 것도 없이 뿌옇고 투명한 것이 되었다. 그들은 삶의 가장자리를 추상적 형태로 부유한다. 그것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 형태는 마치 꿈속에서만 허용되는 사실처럼 어설프다. 그들은 하나의 뉘앙스 (nuance)로 묶여 한 장면으로 구현된다. 이때 무의식 속 여러 시간의 장면들이 우연적인 조 합으로 그려진다. 그들은 나에게 일상적이고 익숙한 제주도의 풍경이다. 거처에 매일 찾아오는 고양이, 까마귀와 말, 집 앞 풍차, 방 안의 의미 없는 소품 등 눈에 익고 손에 익은 것들은 단편의 메타포(metaphor)가 되고 화자의 자리를 대체하기도 한다. 새롭게 은유된 단편들은 사실과는 분리된 별개의 것에 가깝다. 나는 이것을 논픽션(nonfiction)에 근거한 픽션(fiction) 으로 정의한다. 이는 모방된 실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면으로 재탄생시킴으로써, 단편의 이야기들이 한 장면 속에서 동시적 전개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란 사람
“예술가병에 걸리셨어요.”
타인에게 간략히 근황을 털어놓았을 때 들은 말이다. 우울증이 아니라 예술가라 그런 것이라고. 나는 아직 '예술' 이 뭔지 잘 모르겠는데 그가 나를 예술가라 지칭해주니 고마웠다.
우울_Blue 란 일상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지인과 같다. 달가운 이는 아니지만 어색해 하지도 애써 미워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왔다가 갈 뿐 이었다. 못 다한 슬픔과 분노 우울은 나 몰래 삶의 가장자리에 이부자리를 펴 놓고 있기에, 살다 보면 언제든 잠시 혹은 길게 그곳을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생각보다 아늑하고, 때로는 추락 할 위험이 있는 행복보다 편안했다.
2019년부터 '이유가 없다.' 라고 말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이유가 되는 우울을 겪었
다. 마음은 시끄러웠지만 외부적으로는 극악으로 무기력했다. 생존과 별개로 유일하게 해낸 것은 매일매일 그리는 거였다. 처음에는 무기력함 자체에 대한 극복이자 나의 감정과 상황에 책임을 지고 싶은 일말의 양심으로 시작했다. 드로잉은 유일한 성취 매체였고, 일기이자, 기록이고, 공부며, 생활과 생존의 일부였다.
책임감을 챙길 수 있을 즈음, 생각과 감정의 대변인이 필요했다. 그 대상을 찾기 위해 삶의 주변을 서성이고 마땅한 것을 찾아 그렸다. 까마귀와 파란사람 또한 그렇게 등장했다. 나는 내가 만든 캐릭터들과 흘러갔다. 그리고 다시 파란 지인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저 몸을 눕히고 가라앉는다. 너무 안 씻지 말고, 적당하게라도 먹고 자려는 노력만을 하며, 어느 순간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있을 때를 기다린다.
독서의 표피 [outside of reading] , 아사천에 채색 , 60 x 91 x cm , 2024
I see U
2024
To you
2024
작은 활동[small move]
2024
동트기 전 [Before Sun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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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ange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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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글로리 [Morning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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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 속 화초 [Shelt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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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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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upon 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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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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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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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w caw c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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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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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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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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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사람과 고양이 [Blue person with 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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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표피 [outside of reading]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