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983
장인적 고집으로 기예에 속박되지 않는 유려함을 가지면서도 우리 전통의 엄격한 절제와 팽팽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나의 미적 사유는 옻칠을 재료로 한 회화적 도전으로 점철된다. 칠 흙이 가지는 고독한 숭고함이 미술이 가지는 자유로운 색채와 만나면 감각적인 텍스처(Texture)의 생명력이 탄생하고 고통 속에서 잉태된 작가 내면의 미의식(아름다움)이 세상 밖으로 태동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그 ‘전통’이라는 진부함에 ‘현재’라는 들숨을 불어 넣고 ‘혁신’이라는 날숨을 기다리는 것이다. 들숨과 날숨,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조화는 내 그림의 철학적 사유와 가치의 기반이 된다.
나는 작년쯤인가부터 ‘무릉도원’ 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코로나 이후 너무 어렵고 팍팍해진 삶 속에 힘들고 지쳐 있는 우리에게 잠시나마 세상 시름을 잊고 힐링 할 수 있는 휴식의 공간,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다시 자신의 꿈을 향해 힘차게 도움닫기 할 수 있는 희망과 치유의 상상적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작가적 생각으로 무릉도원(이상향)이라는 선조들의 지혜를 주제로 가지고 왔다.
인간이 꿈꾸는 천국과 같은 곳을 동양에서는 '무릉도원(武陵桃源)‘ 혹은 '도원경(桃源境)'이라고 하며 산수는 단순히 산과 물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동양에서 산수는 어지러운 속세와 대비되어 신선(神仙)이 사는 이상향을 상징하고 있다. 작품 속 우아하지만 무심한 듯 바라보는 여인의 시선 너머, 동양적 사유의 공간인 무릉도원(이상향)이 있다. 동양적 사유의 방식인 마음이 인식의 주체가 되는 주관적 시선으로 무릉도원의 세계를 바라보면 그 매혹적인 풍광 안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미국 현대 미술가인 에드워드 호퍼는 '어떠한 능숙한 발명도 상상력이라는 필수 요소를 대체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고 그 빠른 시간을 따라잡기에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부족해지는 이때,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지금의 이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 장자의 '호접몽'처럼 대상의 내부와 외부를 구별하는
눈앞의 경계를 관념 속으로 사라지게 하고 자신 내면의 아름다움과 만나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빛의 초상 , 나무에 옻칠, 자개, 레이스 , 146 x 112 cm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