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SION9

  • LEE KISOOK

    b.1964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난 무언가 그래도 지속되는...영원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아마도 그 것이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삶에 대한 나의 집착의 이유를 정당화하는 내 안의 정답이었던 것도 같다.‘암각화’는 질긴 인간의 삶이 드러난 선각(線刻) 위에 축적된 자연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어 마치 영원을 닮은 듯 나를 매료시켰고, 내 작업의 긁혀진 ‘각인된 선’은 원초적 생명감으로 다가와 거기서 시작되었다. 지금의 바탕 작업은 첫 개인전에서 보였던, 암각화와 동굴벽화를 소재로 여러 겹 두꺼운 한지에 흙을 바르고 젖은 상태에서 긁어 찢겨진 선각을 좀 더 얇게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어떤 평론가는 그어진 선이 아닌 각인된 선에 대한 나의 집착을 ‘완벽함의 추구’라 풀었는데 그건 살아온 나의 성향를 살펴보면 굉장히 설득력이 있는 듯 했다. 다만 먹과 한지의 스밈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동양화를 전공한 내게 재료의 한계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했다.

    ‘분청’은 태토 위 깍아 낸 드로잉에 백토가 얹혀지고 열에 의해 마치 암각화의 각인된 선처럼 굳어지며 간결한 자연의 모습으로 드러나 은유의 풍경이 되었으며, 내가 알던 화이트와는 다른 회백색의 색감은 우리의 정서와 깊이 닿아있었다.

    캔버스에 여러 겹의 한지를 붙이고 흙이 얇게 발린 상태에서 순간에 긁힌 ‘선’들은 한지가 한 두 겹이 찢겨 지며 긴 섬유질로 인해 ‘끌림의 선’으로 연출되는데, 이는 최소의 것만을 남기고 떨구기 위한 (이후 보존상 크랙의 위험을 덜기 위한) 방법인 동시에, 말린 후 수십 번의
    채색과 샌딩 작업으로, 그들이 뭉치거나 흩어지며 어떤 공간을 이루게 된다.

    나는 줄곧 ‘선(線)’, 그러니까 흙이 발라진 젖은 한지 위에 찢겨지는 ‘선’이 가지는 자유로움과
    변화에 집착해 왔고, 그러나 그것이 이루는 형상보다는, 자유로이 뭉치거나 흩어지면서
    어떤 대기와도 같은 유동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하였다.

    바탕 작업에서 ‘각인된 선’은 말린 후 수십 번 채색을 올리거나 채색을 한 후 샌딩 작업에 의해 순간의 긁힘이 다시 돋아 오르는데, 자연 속 풍경에서 드러나는 선(線)과 나의 주관적인 감정의 선이 겹쳐 선과 선이, 점과 점이 만나는 자리에는 공간이 열린다. 그리하여 마치 순간이 영원에 닿아있는 듯
    나의 아득한 시선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끝없는 대지의 평화로움처럼...
    때로는 하늘과 맞닿은 산의 능선처럼...
    때로는 한없는 바다의 끝선처럼...
    그사이 남겨 비워진 ‘길’은 지나간 수 많은 사람들의 쓸쓸함과 정겨움의
    흔적으로 남아 인간과 자연의 역사는 함께 흘러간다.

    때로 화면에 보이는 붉은 대지는 이런 분청의 회백색 뽀얀 화면과 함께 내 작업의 근간을 이룬다.
    어느 여행에서 만났던 파헤쳐진 붉은 흙은 마치 속살처럼 나에게 파고들어 드넓은 대지의 평온함과
    영원함을 꿈꾸게 한다.

    결국 ‘풍경’이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으로, 그리하여 내가 생각하며 바라볼 수 있고
    때로는 아득한 시간을 지나온 자연의 축적된 시간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유한한 삶을 많이도 바라보았고 내려앉는 세월의 무게를 담대하게 버텨 온 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에게 ‘풍경’이란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담담히 바라볼 수 있는 아득한 나의 시선이며, 축적된 시간이 담겨진 내 풍경 속에 그런 삶의 평화를 아득하게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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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묘풍경-Wind (Scenery of Lines) , Soil and Oriental Painting Korean Paper on Canvas , 80 x 100 cm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