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976
나의 작업은 한글의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규칙하게 쌓여 있는 자음과 모음의 집합체는 나에게 어쩌면 하루일 수도 있고 순간일 수도 있다.
또는 시공간을 넘어선 여러 기억의 덩어리일 수도 있다.
이는 나에게 하나의 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특정한 감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무작위로 축적된 자음과 모음의 파편들은 개인의 기억을 소환시키며 말, 글, 그림, 사진, 영상, 음악, 관계 상황 등과 연관되어 특별한 무엇으로 다시 떠오르곤 한다.
이러한 조형적 시도는 수년간 반복되며 다양한 이미지들을 통해 탐구하고 있다.
초기에는 어떤 특정 이미지나 순간을 그대로 반영하는 재현적 시도도 해보았고,
감각적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 추상적 표현도 해보았고, 단순한 색을 이용한 미니멀한 작업도 시도해 보았다. 그러다가 근래에 들어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습관이 생겼으며, SNS(눈)를 통해 현재의 기억 층을 연결시키는 경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그려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자음과 모음의 무덤 같은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결국 인간의 삶에서 기억이란 어쩌면 삶의 모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또한 무의식의 기억이 만들어 낸 시각적 산물이라 생각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의 논리에 의하면 그림이란 신체적 기억과 이성적 기억의 혼합으로,
이성적 기억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신체적 기억인 몸짓으로 표현하여 시각화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유의 기억-Ⅱ , Mixed media , 79 x 116 cm , 2023
무의식 속 기억의 지층은 파편화된 한글의 자모(子母)를 통해 되새겨 진다.
무의식 속 기억의 지층은 파편화된 한글의 자모(子母)를 통해 되새겨 진다.